어둠의 저편
이 책이 그려내는 것은 도시의 밤이다. 도시의 밤을 마치 잠든 동물에 비유하며 그 움직임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도시의 밤은 이제까지 인류가 지나온 밤과는 다르다. 이제까지 인류가 이룩해온 이성의 빛이 어둠을 도시 밖으로 몰아낸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밤은 인공의 빛과 어둠이 조율하는 이중주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변화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밤이란 시간의 연장이다. 밤이면 그치던 모든 업무는 다가오는 어둠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어 간다. 어둠 속에 숨겨져 가질 수 있던 자신만의 밀실은 이제 더 이상 도시 한 가운데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이제 도시는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어둠을 쫓아내며 빛나고 있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일은 어떤 일을 의미하는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보여준다. 그 등장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두 자매를 들 수 있다. 먼저 언니는 아름답다. 하지만 약을 상시 복용하고 미에 구속되어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을 통틀어 그녀가 보여주는 인상 깊은 장면은 변치 않고 잠드는 모습뿐이다. 동생은 책을 좋아하고 과거로 밀려나는 재즈와 60년대의 유럽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그녀는 이 소설에서 밤거리를 배회한다. 이런 대조는 무엇을 뜻할지 의문을 던져본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몸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두 자매 역시 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면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몸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서 우리는 몸에게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많은 약을 먹는다.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먹는다. 그리고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운동을 해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갖기 이전에 몸이 피곤한 만큼 쉬는 시간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빛을 가져와 어둠을 밝히며 작게 약동하는 도시의 밤과 같이 그 안의 현대인들은 쉼이란 여유가 아니라 계속되는 움직임을 우리의 몸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런 행동이 몸을 위하는 모습과 과연 일치된다 할 수 있을까?
근대에 접어들면서 생산과 소비는 점점 빨라진다. 더불어 우리의 삶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주저 없이 합리성을 들 수 있다. 이성을 근거로 한 합리성이 우리의 삶을 차지하며 도시가 어둠을 저편으로 밀어내듯이 인류는 비합리적인 것들을 멀리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안에 많은 어둠이 남아 있듯이 도시인의 삶 또한 많은 부분에서 반 합리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몸을 파는 소녀의 이야기 등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도시의 뒷거리에 존재하는 어둠처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둠도 인간이 가진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욕망 없이 합리에 근거해서만 움직인다면 그 인간이 기계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저 사회를 이루는 한 생체 부품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히 욕망에 한정된 말이 아니다. 이성이 비합리란 이름 안에 제거해 나간 모든 것들을 총칭한다. 과거 이성이란 미신은 대한민국이 당연히 이어가야 할 많은 전통의 명맥을 미신타파라는 칼로 잘라 냈다. 이처럼 어둠 속에는 잊혀진 많은 전통들처럼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많은 덕목들이 숨쉬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자매의 차이도 이와 같다. 세상이 요구하는 미를 갖춘 언니는 도심의 어둠 앞에서 쉬어야만 한다. 그녀는 도시의 낮에서 활동하는 자이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의 움직임을 쉬지 않고 쫓는 자이다. 쉽게 말한다면 세상이 요구하는 양식에 부합되게 움직인다. 그런 그녀가 비합리적인 어둠 속에서 깨어난다 하더라도 그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다시 잠드는 일 뿐이다. 반대로 세월에 잊혀진 것들을 향수하는 동생은 어둠 속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어둠은 동생에게는 실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어둠 속에서 그녀는 언니의 품으로 돌아온다. 두 자매가 같이 어둠 속에서 잠든 모습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고개를 들어 보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해보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세상에서 털어버리기 전에 그들을 느껴보자.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 오른손과 왼손이 필요하듯이 이성과 함께 가슴으로 살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은 그저 공포이고 멀리 해야 할 것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있어야 할 것들이다.
역시 대충 쓴게 티난다.
명확하게 딱부러지지 못하고 문장들 사이에 비약이 보인다 특히 두 자매에 관련된 것들이 그러하다. 이성과
비이성적인 것들을 빛과 어둠에 빛대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니는 의미를 쓰고 싶어지만 쓰고난 결과는 그저 그렇고 진부한 결론과 글의 나열 뿐이다.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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