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장점보다는 단점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될 경우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있다.
지금 원희처럼. 의미업시 자신의 단점을 나열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을 비웃는다.
그러나 더 이상한 점은 이런 기분을 원희 자신이 즐긴다는 점이다.
자위행위다. 추악한 자위행위다. 자신의 비판을 자위행위로 타락시키는 저열한 욕망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 분노하지 않는다. 부조리 자신에 분노하지 않는다. 점점 식어가는 자신을 비웃는다.
사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 가벼움의 무게 짓눌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늘 동기하나가 말했다. 실천없는 이론이 무엇인가라고. 도망갔다.
이론도 실천도 없다고 말하지 못한 체 나는 꼬리를 끌고 달아난 개처럼 도망갔다.
질투한다. 질시한다. 자신보다 뒤어난 그들에게. 그들이 가진 무지와 그들이 가진 용기를.
그들이 지닌 지식과 지혜를. 그리고 내가 가진 모자람과 어중간에 질려 도망간다.
자신이 풍기는 악취에 도망갈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눈을 감아 잠이 들었는데 젖어드는 감정은 몽롱하다. 의미 없이 무의미조차 규정하지 않은 체로 원희는 무기력하게 썩어간다.
자신은 깃발하나 잡을 의지가 없다. 치열한 의지 같은 것은 천국보다 먼 이야기다.
생각없이 말을 내뱉고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주워 섬긴다. 자기 것은ㄴ 없이 남의 생각과 남의 지식으로
남 처럼 살아간다. 그러며 자신과 사는 삶에 욕지기를 낸다.
아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마저 새어나와 바람소리가 되어간다.
순수를 말하고 싶었다. 의지를 말하고 싶었다. 무한에 가까운 지식과 극한에 다다르는 지혜를 바랬다. 그러나 게으른
나는 병든 개처럼 씩씩거릴 따름이다.